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인 랜드 (문단 편집) === 어린 시절 ===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61efe46adfb38c8c359a9826a48eff81.jpg|width=300]] [[파일:external/cdn2.hubspot.net/Young_Ayn_Rand.jpg|width=300]] 1905년 [[러시아 제국]]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유대인]]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유대계 [[사업가]]였다. 원래 그는 [[화학]]을 공부할 생각이 없었으나, 당시 유대인이 다닐 수 있는 대학이 워낙 제한되어 있었던 탓에 [[화학과]]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그는 전공불문하고 뛰어들어 그것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결국 그는 그 방면으로 꽤 성공하여 아인 랜드는 어린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큰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안락하고 커다란 아파트에서 살았고 그 아파트 건물 1층에는 아버지 소유의 [[약국]]이 있었다. 아버지는 대단히 엄격하고 조용한 사람이었고 아인 랜드가 기억하는 한 가까운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여가시간마다 그는 당시에 러시아에서 유행하던 사회비평[* 주로 러시아의 [[신비주의]]와 정치적인 [[절대주의]]에 반대하여 [[유럽]]의 문명과 [[영국]]의 정치제도를 옹호하는 부류의 글들이었다.]을 즐겨 읽었는데,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그 자신이 러시아에서는 드물게 보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나름대로 존경했지만, 그다지 친밀한 부녀관계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사람으로 아름답고 발랄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해서 늘 집에서 연회를 베풀곤 했다. 성장기를 통틀어 그녀는 어머니와 늘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어머니를 굉장히 싫어했었다. 그녀는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에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녀는 원칙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인 스타일면에서 사교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상 따위에는 무관심했던 반면 사교적인 것들에는 관심이 많았다. 어린 시절 그녀와 내가 부딪쳤던 것은 내가 비사교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는 아이들과는 놀지 않았고, 여자친구 하나 없었다"고 그녀는 회고한다. 그녀에 따르면, 어린 시절 양쪽 부모 어느 쪽으로부터도 그다지 깊은 사랑을 받지 못했던 그녀가 유일하게 인정을 받는 경우는 주로 그녀의 영특함이 발휘되는 때였다. 이를테면 난데없이 어머니가 그녀를 친척들 앞에 내세우며 의기양양해 하는 경우, 혹은 아버지가 그녀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것은 주로 그녀가 어린아이지만 아주 명료한 생각을 나타냈을 경우였다고 그녀는 얘기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안티페미니즘]]적인 생각[* 이는 사실 그녀의 평생 지속된 요소이기도 했다]을 가졌던 반면, 소위 말하는 남성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우월한 가치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녀가 일찌감치부터 인간에 대해 가장 높이 평가해온 속성은 통상적으로 남성적이라고 간주되어 온 것들, 즉 이를테면 목적추구성과 강인함이었다고 그녀 자신은 회고한다. 로젠바움 일가의 특이한 점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그들의 삶에 별달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종교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관습적이고 감정적인 면에서 종교적인 체했을 뿐 확신에 찬 진정한 신앙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 가족은 그저 의례적으로 1년에 한두 차례 성일을 지키는 것이 고작이었고 실제 앨리스는 자라는 동안 한 번도 따로 종교적인 훈련을 주입받지 않았다. 후에 러시아에서 [[반유대주의]]가 폭풍처럼 거세질 무렵에도, 그녀의 집안에서는 별로 유대인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된 적이 없었다. 후에 아인 랜드는 "나는 유대인으로 태어났다"고만 인정할 뿐, 그 사실이 종교적, 사회적, 기타 어떤 면에서건 그녀에게 그 이상의 아무런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았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녀는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 [[러시아]]는 그야말로 역사의 격동기를 겪고 있었다. 이미 1914년,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던 러시아는 독일, 오스트리아와 전쟁에 들어갔으며 1917년 2월 말, 그녀의 생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러시아 황제가 퇴위했다. [[로마노프 왕조]]의 절대권력은 사라졌고 [[노동자]]들, 학생들, 중산층이 주축이 된 대다수의 시민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월 혁명]]에 열광했다. 당시 10대 초반의 소녀였던 아인 랜드는 당시 총리가 된 젊은 [[변호사]] [[알렉산드르 케렌스키]](Alexander Krensky)를 열렬히 사모하였고, 그 사람이야말로 자유와 개인주의를 수호해주는 화신이라고 믿었다. 정작 케렌스키는 사회주의자로 나타난다. 당시에는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트로츠키]], [[스탈린]] 같은 [[볼셰비키]]들이 망명에서 페트로그라드로 속속 돌아오고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블라디미르 레닌]]도 섞여 있었다. 그들이 돌아와 점점 힘을 장악하게 되자 당시의 처참해진 경제를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던 아인 랜드의 영웅 케렌스키는 10월 혁명으로 정권을 잃고 결국 해외로 피신하게 되었다. 그 무렵 어느 날 오후의 일을 아인 랜드는 평생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느 날 아인 랜드는 아버지의 약국 안에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부랴부랴 약국 안에 있던 얼마간의 개인소지품을 챙겨 아파트에 감추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가 물건들을 감추고 위층에서 막 돌아오는 순간, 한 패의 무장군인들이 들어오더니 문 앞에 붉은 딱지를 붙였다. 인민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국유화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개인가게뿐 아니라 은행, 및 은행에 비치된 개인 안전금고까지 모든 것이 국유화라는 명목으로 압류되던 시기였다. '''"그 어린 나이에도, 나는 [[공산주의]]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곧 국가를 위해 산다는 것을 의미했다. 문맹이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 문맹자와 가난한 자들이 지상의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그들이 얘기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라고 그녀는 회고한다. 이처럼 [[공산주의]]를 직접적으로 겪은 것이 평생 그녀의 정치성향을 결정짓게 하는 피할 수 없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가족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몰수 과정을 직접 겪어야 했으며, 이후 새로운 공산주의 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투쟁]]해야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그 당시 러시아에서의 삶은 음울했지만, 특히 정권을 장악한 세력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적응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아인 랜드는 그녀 자신이 당연히 이래야 한다고 느끼는 그러한 방식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한 세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린 소녀 시절, 이미 그녀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역사학]]을 전공하였고, 훗날 그녀가 두각을 나타냈던 문학과 철학 분야는 거부하였다. 그 두 분야에서 당시 학계가 높은 가치를 두고 평가하던 것 대부분에 그녀는 조금도 동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